인생은 어찌 보면 한 편의 소설과 같다. 그래서일까? 스탕달의, " 소설이란 거리로 들고 다니는 거울"이라고 한 말에 요즘 따라 공감이 깊다. 스탕달의 이 언명은 인간사에 소설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직설하고 있는 듯하다. 즉 소설은 우리네 인생의 재현임을 의미하기도 하여 명언이란 생각마저 든다.   필자가 만난 어느 여인도 자신이 겪어온 삶의 역경을 말할 때 소설 분량을 들먹였다. 여러 권의 소설 내용으로도 자신이 겪은 고초를 이루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의 삶이었다는 뜻 일게다. 특히 여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 타의에 의하여 가해진 불행이 전부였다고나 할까. 여인의 가슴 아픈 인생사를 듣노라니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이는 현대는 전과 달리 유리 천장도 사라지고 여권이 신장되어서인가 보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봐도 성폭력 및 성희롱의 희생자 전부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비록 여성이 남자와 달리 신체상 힘은 약하지만 반면, 요즘 여성들은 모든 방면에 남성 못지않은 능력과 고학력을 지니기도 했다. 각계각층에 거세게 불어 닥친 여풍女風이 이를 증명하잖은가. 이런 세태이련만 아직도 여성은 약자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여인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 된다면 지나칠까. 여인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며칠 전 모처럼 마을 뒷산을 오르는 도중 숨이 턱에 차 잠시 쉴 때다. 오랜만에 산 정상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려니 불어오는 바람조차 청량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때마침 불어온 남실바람이 온몸의 땀을 식혀주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눈을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맞은 편 의자엔 몸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 차림의 여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때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그녀의 나무 등걸처럼 바짝 마른 왼쪽 손에 시선이 머물렀다. 손가락마다 끼워진 4개의 금반지가 햇살을 받아 번쩍여서다.   산행을 하는 사람치곤 옷차림이 걸맞지 않다는 생각에 잠길 즈음, 갑자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 아주머니요! 이곳 자주 오십니꺼?" 그녀의 곱상한 외양과는 딴판인 걸걸한 목소리와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왠지 정겨웠다. 하여 초면임에도 별 경계심 없이, " 네. 가끔 찾곤 합니다" 라고 짤막히 답했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배낭에서 팔뚝만한 오이 하나를 꺼내더니 불쑥 내 앞에 내민다. 마침 갈증이 심했던 터라 거절치 않고 선뜻 받았다. 그녀는 내 앞에 오이 한 개를 내밀고는 묻지도 않는 이야기보따리를 스스럼없이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7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젊은 날 남자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 말을 듣고 보니 나이에 비하여 부쩍 노쇠해 보이는 모습에서 지난 날 인생살이의 고통을 얼굴에 바른 듯한 인상을 받았다. 첫 결혼은 불행의 시초였다.  17세에 가난 때문에 맘에 없는 결혼을 서둘러 했으나 석 달 만에 남편이 잠을 자다가 황망히 숨졌다고 했다. 그 후 19세에 나이 지긋한 홀아비 재취로 시집을 갔단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의처증이 심하여 마당만 나가도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이에 못 견딘 여인은 그 남자와 산 지 2년 만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밤 보따리를 싸안고 야반도주를 했단다.   이렇게 하여 도착한 곳이 서울 역이었다. 이곳 역사驛舍에서 사흘 밤을 노숙을 할 때 초로의 여인이 다가와 자초지종을 묻더란다. 그리곤 자신의 집에 식모로 올 생각 없느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마침 딱히 갈 곳도 없는 처지라 망설일 이유 없어 그 집 식모로 갔다고 했다.   그곳에 간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 주인 아들한테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그 때 임신돼 태어난 아이가 지금의 딸이란다. 그녀가 주인한테 그 집 아들의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사실을 알리자 오히려 딴 사람 애를 밴 후 자기네들을 겁박한다며 월급도 한 푼 안주고 내쫓았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그 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행상, 식당 일 등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 갔단다. 그렇게 해서 낳은 딸이지만 반듯하게 자랐나보다. 딸이 다니는 직장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자랑 한다. 평생을 오로지 딸 하나 바라보며 혼자 지내왔다는 말을 할 때는 목이 메는 듯 울먹였다.  이 말을 하면서 그녀는 지금이라도 심성 좋은 영감님이 있으면 지난 세월 못 다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그녀로부터 사랑이란 말을 듣는 순간, `인간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의 감정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홀로된 노인들에게도 인생의 반려자는 꼭 필요하다. 오죽하면 늙을수록 등 긁어줄 배우자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그동안 질곡의 삶이 너무 힘들어 바닥에 주저앉을 힘조차 없었다는 그녀다. 젊은 날부터 줄곧 인간의 탁한 본성과 마주하며 기구한 삶을 살아온 그녀여서 일까.   황혼에 이른 연령이지만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가 오히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삶은 사랑이 주성분이어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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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