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물(人物)이란 말은 사람과 물건을 가리키지만 이제는 사람을 두고 하는 대표적 용어가 되어 지도자를 이른다. 사람 됨됨이나 인품, 쓸모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인재)을 찬사하는 말이 되었고, 인물이 좋다 라고 할 때는 사람의 얼굴 모양(용모)이 미려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와서 정계나 예술계나 학계에 있어서 뛰어난 저명인사가 적다고 하며 인물가난을 호소한다. 옛날에는 훌륭한 인물로는 양반이 고작이다.   조선 중엽 이후에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계급을 일컫는 것으로 동반에는 문관, 서반에는 무관 및 사대부 등 두 쪽을 합쳐 양반이라 했다. 그러나 현세 와서는 양반 계급은 없어지고 인물이란 말이 보편화 되어 점잖고 착한사람-이 사람이야 말로 양반이지. 자기 남편을 제 삼자에게 지칭하는 것으로-우리집 양반. 남자를 높이거나 홀대하여 이르는 말-바깥양반. 또는 이런 싱거운 양반 봐라 하면서 무관하게 쓴다.  현 시대가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인물이란, 정가에 역점을 두면, 상식에 밝고 전공한 분야에 학식이 풍부하고, 정직하고, 인품이 바르며 약속을 잘 지키고, 언행에 조심성 있고 남을 잘 배려하는 겸손한 사람을 바란다고 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이 있어야 한다.  지금 지도자의 결핍이라는 것은 야비하고, 천한 막말로 인화에 문제가 있고, 예의와 도덕에 불경한 자는 싫어한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계층의 인물이 지도자의 성품이다. 정치학 서론에 지도자의 능력은 이성과 판단력 그리고 친화력이 지도자가 되는 요소다. 난국이나 불행을 당했을 때, 병 걸리고, 육체적, 정신적 파국에 직면했을 때에 사람들은 지도자를 찾는다. 그 때는 앞장서는 자력, 해결할 수 있는 지혜, 왕성한 기백이 만사의 능사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마지막 시련은 자신의 신념과 그것을 계승하는 의지를 나중에 따르는 국민들 가슴 속에 심는 일 뿐이다.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그의 불변성을 가진 의지력-즉 덕(德)과 절조(강한 주장)이다  속담과 격언집에, 동물인 말도 고삐 다루는 솜씨를 보고, 기수의 자질을 알 수 있다. 날쌘 사냥개를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냥꾼 뿐이다. 바다의 선박은 육지를 멀리 떠나서는 운전의 책임은 사공의 것이다.   4자성어에 `천택납오`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남의 위에 선 사람은 포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함을 이른다.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튀어 오르고, 우두머리가 없으면 일이 잘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두머리가 둘이면 더욱 더 안되어 사건이 얄궂게 된다.  흔히들,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고, 방법을 제시해 주는 사람을 그 방면의 위인 또는 도사란 말을 많이 듣는다. 위인이란 도량과 재간이 뛰어난 능수능란하고 위대한 사람을 가리키는 지도자급 능력자이고, 도사는 그런 일에 경험이 아주 풍족한 장인을 말한다. 그래서 위인과 도사를 전문가로 대칭한다.   인간 중에 가장 위대한 자는 모든 이웃사람을 사랑하고, 선인이나 악인이나를 묻지 아니하고 모든 힘없고 약하고 무식한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인물(지도자)이다. 지도자의 명성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사용한 수단과 방법에 의해서 평가된다. 정직·친절·우정은 물론이고, 차별·학벌·빈부 등 도덕을 견고히 지키는 사람만이 겸양하고 위대한 참다운 인물로 섬기게 된다.  지도자는 국가의 도표요, 선진국을 향하는 이정표다. 일반 국민들이 평범하게 인식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것은 훌륭한 행위와 거기에서 풍기는 도덕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두 가지다. 야심적인 생활상이냐, 아니면 박애적인 실천상으로 구분된다. 정성껏 쌓아 올린 탑은 그림자로, 지도자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부류로 판단할 수 있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 국민들은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재주가 비범하고 용맹이 탁월하여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영웅적인 지도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지용(지혜와 용기)이 뛰어나고 기개(의기)와 풍도(모습과 태도)가 떳떳한 인물이길 바란다.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하는 영웅호걸 같은 인물을 기대하고 싶다. 국민의 여망이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신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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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