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애매하고 쓸모없는 생각에 골몰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의 생각들은 모두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 뿐이다.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들여 놓을 수는 없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하면서 가장 더럽다` `물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어 생명의 원천이지만 인간에게는 마실 수 없어 파괴적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하나이며 같은 길이다` `만일 모든 것이 연기가 된다면 코가 식별기관이 될 것이다`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실로 많은 사물을 탐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오랜 세월동안 애매한 것에 접근하지 않도록 배워왔기 때문이다. 답안지를 채워 넣을 때도 확실한 것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 가까운 답이라든가, 비슷한 답들은 과감히 버리도록 훈련을 받아온 것이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하면서 또한 가장 더럽다`라는 전제에 눈살을 찌푸릴 사람들이 있다. `깨끗하면서 더럽다니, 그런 애매한 말이 어디 있어!` 당장 깨끗한지 더러운지 양단간에 결말을 내라고 독촉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애매함이란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치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약간만 자신이 빠져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이 애매한 전제가 확실한 논리를 바탕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마실 수 있어 생명의 원천이 되지만 인간은 마실 수 없기 때문에 파괴적인 것일 뿐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바닷물은 당연히 깨끗함과 더러움을 동시에 갖는 양면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바닷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가능한 생각이다.  고정관념을 깨트리면 시야는 단연코 넓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처럼 사람의 다면적 특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차의 천막 덮개와 같이 무겁고 투박한 천으로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고정관념이었다.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런 상식들이 깨어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여자는 영원히 치마를 입을 것이며 천막은 천막으로 남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언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아니 깨어진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발명품, 선도적인 패션으로 추앙받기에 이른 것이다. 천막으로 만든 청바지는 백년이 훨씬 넘도록 최정상의 의복으로 사랑받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당연시 되어 버렸다. 이런 사실 앞에서 누가 감히 고정관념의 고수를 찬성하겠는가?  이렇게 발명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깨어진 고정관념`에 대한 일화는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뿐. 정작 자신은 고정관념에 젖어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다. 소심하게 굴며 애매함에서 피하려고만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을 알게 모르게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 볼펜으로 종이에 구멍을 뚫어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 가로로 줄이 쳐진 공책을 세워서 써본 일이 있는 사람, 도장에 인주대신 빨간 잉크를 발라서 찍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경우이다.  무의식적으로도 이렇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스스로 노력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아마도 위대한 발명에 못지않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고정관념을 버려라. 등에 잔뜩 짊어진 고정관념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자꾸 주저앉게 할 것이 분명하다. 무거운 짐을 벗고, 가볍게 자신있게 발명의 세계로 다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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