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물 가운데 드물게 손을 능수능란하고 자유자재로 쓰는 것은 사람 뿐 이다. 그래서 창조주는 인간을 가장 뛰어나고 영묘한 능력을 가졌다 하여 영장이란 칭호를 주었다.   그런데 불행한 조짐인 것 같지만 태어날 때는 빈손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갈 때도 모든 것을 놓고 간다하여 `공수래 공수거`란 말이 생겨났고 그 뜻은 사람의 일생이 허무함을 이르는 의미다. 아무것도 없고 빈것이란 글자로 `공(空)` 이라고 하고, 어떤 종교에서는 중생(인간)이나 제법(갖가지 법)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임시적으로 화합해서 된 것이므로 불변의 실제가 없음을 뜻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운`(運-운수)이란 글자를 반 바퀴 돌리면 불가사의 하게도 또 다시 `공`이 된다. 공과 운은 서로 회전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일생이다.   여기에서 허무주의란 사상이 생겨난 것이다. 철학의 니힐리즘(허무주의)이란 라틴어에서 온 말로 실재나 진리는 부정하는 견지에서 일체의 사물이나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에 인식되지 않고,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는 주의(사상)이다. 19세기에 시작된 용어로 합리주의 내지 과학인식과 문명의 위기로 인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상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각적으로 인식하고 절망과 존재의 없음을 강조하는 허무(덧 없음, 무상함)의 주창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독일의 시인이요, 철학자인 니이체의 `비극의 탄생`과 동양 철학에서는 `허무학`인 노자·장자 등이 역설한 허구성을 근본사상으로 하는 학문이 도교에 노장사상의 허무설에서 밝히고 있다, `허무`란 아무것도 없고, 텅빈 것으로 덧없고 무상한 것이다. 노자의 허무학도 천지만물은 인식을 초월한 하나라는 본체에서 발생하는데 그 본체는 형상이 없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허상이란 것이다.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지구는 인간의 무대요, 거기서 잠시 놀다가는 광대이다" 방랑자로 버려야 할 5가지, 욕심·명예·교만·허세·고집, 남기고 가야 할 5가지, 나눔·배려·효도·믿음·감사 등이다. 나그네로 살다가는 인생-끝날 때는 결국 빈손이다. 그런데 필자는 다소 의심이 가는 의견으로 기독교 신자로써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사람을 선호의 대상은 아니지만 선망의 대상으로 강론한 적이 있다.  야곱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요, 부모는 이삭과 리브가이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나는데 그는 이삭의 60세의 쌍둥이 후동으로 그의 형 `에서`의 발뒤축을 잡고 태어나서 야곱(발뒤꿈치를 잡음)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그의 형은 성질이 용맹하고, 반면에 야곱은 됨됨이 온순하고 지혜가 예민하고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야곱을 편애하였다. 어떤 날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형의 주린 기색을 보고 야곱은 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었다.   그 후 눈이 어두운 부친을 속여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고, 형이 분노하고 원한을 가지자 부모와 이별하고 1800리 되는 외가 `하란`으로 피신했다. 20년간 외삼촌 집에서 목축하는 일에 봉사하면서 자녀 11남 1녀를 두었다.   어느 날 밤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에 이겨 `이스라엘`이란 명패도 받았다. 베들레헴에서 부친의 별세를 보았고 가나안에 흉년이 든 것을 알고 열 아들을 보냈다. 그 동안 떠나있던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애급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가족 70명을 거느리고 애급으로 내려와서 애식 요셉을 만나고 17년간 안락하게 지내다가 147세에 소천했다. 야곱의 일생은 물론 파란곡절의 시기도 있었지만 빈손이 아닌 손에 잡은 수확이 다른 이와 구별이 되는 것 같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완성되며 죽음의 길에는 비상구도 없고 대피소도 없다.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며 행복보다는 보람이다. `전도서` 말씀에는 돌아가서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 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말씀에 인간의 존재가 증명된다.   그밖에 세상말로 일취지몽, 초로인생, 후생약몽, 일장춘몽, 낙화유수 등 모두가 뜬 구름 쫓는 인생- 그대의 생각은 구만리 장천이요, 마지막 걸치고 가는 수의엔 주머니가 필요 없다고 한다. 믿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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