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하며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래동화들은 어른들에겐 식상할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상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영덕이다. 물론 볼거리와 먹거리는 기본 옵션이다. 올 여름 아이들과 함께 발 딛는 곳곳이 스토리텔링이 있는 영덕에서 문화, 전통, 기록을 탐방해보는 건 어떨까?◆ 거북아~ 거북아~ 블루로드를 걸으며, 헌화가 이야기(feat 거북바위)블루로드의 시작점인 대게누리공원에는 아주 큰 대게가 한 마리 보인다.  이곳에 왔다면 여기서부터 영덕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게공원에서 왼쪽 논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옆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움직이진 않는다.  이 거북바위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곳은 송라역驛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정거장, 기차역이랑 비슷하다. 신라시대 신임 강릉태수가 부임지로 향하던 중이었다.  태수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워 가는 도중 사람들이 얼굴을 보려고 구경나왔다.  송라역에 쉬던 중 부인은 절벽 위에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  “아, 저 바위에 핀 꽃은 무슨 꽃인지 참 곱기도 하구나. 누가 꺾어다 주면 좋으련만. 누가 없을까?” 모두가 높은 절벽이라 주저하고 있을때 한 남자가 절벽 위에 꽃을 꺾어 바쳤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그 유명한 헌화가의 수로부인 이야기이다. 향가 중에 장소가 알려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아이들과 함께 블루로드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수로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 헌화가는 수능 단골 문제이므로 미래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아주 좋을 것이다. ◆ 잊지 말아야 할 영웅들의 이야기, 장사상륙작전올여름 휴가로 장사해수욕장에 온다면 장사 앞바다에 엄청나게 큰 배를 볼 수 있다.  큰 배의 정체는 2019년 개봉한 영화 장사리:잊혀진영웅들의 실제 이야기, 바로 장사장륙작전을 수행한 문산호이다.  장사상륙작전은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실시한 양동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일조했다.  이작전에 꽃다운 나이의 학도병 772명이 참전해 139명이 사망했다.  사실 이 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에 공식 문서조차 없어 역사에 남지 못했으나 1997년 3월 6일 좌초된 문산호가 발견되면서 장사상륙작전도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배의 내부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돼있다.  특히 이곳엔 투명 유리 밑으로 그 당시 작전에 참여한 학도병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중에는 이름이 없는 것도 있다.  아직도 신원을 알 수 없는 학도병들이 많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한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숭고한 뜻을 기리고, 아이들에게 용기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은 어떨까? ◆ 태백산호랑이 신돌석 장군과 함께 떠나는 호국 여행최초의 평민 의병장 신돌석, 그는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신돌석 탄생과 관련해 고래산에 집터만 한 큰 바위가 있었는데 부모는 매일같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신돌석장군이 태어났다.  신돌석 장군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세고, 골격이 튼튼해 5,6세에 맨주먹으로 미친개를 때려잡고 큰 나무나 고을의 객사를 자유자재로 뛰어넘어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신돌석이 산에서 내려오다 큰 호랑이를 만났는데 신돌석장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놈” 하고 호통을 치니, 사실 이 호랑이는 큰 나무였는데, 그 기에 눌려 뿌리째 뽑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해안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신출귀몰하며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신돌석 장군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태백산 호랑이’라 불렀다.  축산면 도곡리에 신돌석장군 생가와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에는 돌들기 체험장이 있는데 초등석부터 장군석까지 돌이 다양하게 있다. 자신이 장군감인지 한번 시험해 보자. ◆ 영해 장터거리 근대역사 문화공간,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영덕 영해면에 위치한 영해 장터거리 근대역사 문화공간은 조선시대 읍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또한 근대기 장터거리라는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총 11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1935년에 건립된 영해지역 금융조합 건물은 당시 농업을 비롯한 이 지역의 산업과 경제 분야 전반에 관련된 근대사의 중심에 있었으며, 당시 유행했던 모더니즘 양식으로 건립돼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또, 영해시장은 지금도 5일장이 열리는데 영덕에는 가장 큰 시장이다.  마트만 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시장은 생소할 수도 있다. 부모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물론 라떼는 말이야 같은 꼰대 짓은 하지 말기를◆ 목은 이색, 원에서 문장을 떨치고 금의환향, 국가 민속문화재 괴시마을영해면에 소재한 괴시마을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탄생지다.  당시 호지촌이라 불렸는데 괴시마을로 바뀌게 된 일화가 있다.  목은 이색 선생이 원나라로 유학 갔을 때 원나라의 학자 구양현이란 사람이 이색을 변방 사람으로 여기고 시를 지어 조롱했다.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서 왕래하느냐?” 하찮은 변방의 사람이 어찌 중국에 왔냐는 말이다. 이에 이색이 답하기를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개소리하지 말란 얘기다. 놀란 구양현은 “술잔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니 바다가 큰 줄 알겠구나”라고 말하자 이색이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 하는구나”라고 답했다.  그 날 이후 이색의 뛰어난 문장력에 구양현은 크게 감복해 이색과 학문을 논하는 친구가 됐다.  이렇게 원나라에서 이름을 날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색은 고향마을이 원나라에서 공부하던 괴시라는 마을과 흡사하다 해 이후 괴시마을이라 칭하였다 한다.  괴시마을은 올해 전국에서 8번째로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전통가옥 40여 호가 잘 보존되어 있고 아직도 영양남씨 집성촌으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담장 하나 기왓장 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옛날 사대부가의 원형과, 문화 예절을 배워보고 싶다면 올해는 괴시마을을 한번 걸어보자 ◆ 상대산에 올라 보니 고래가 뛰어노는구나, 고래불해수욕장영덕군의 대표 해수욕장인 고래불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은데다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상대산에서 바라본 고래불해수욕장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고래불이란 지명은 고려시대에 생겼다.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생이 상대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데 큰 고래 무리가 뛰어노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고래가 뛰어노는 펄이다라고 해서 고래불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은 펄의 옛말이다. 고래도 맘껏 뛰어놀 만큼 넓고 편안한 고래불해수욕장에는 해수욕뿐만 아니라 곳곳에 고래 등대, 멍 때리기 전망대, 알록달록 방파제 등 볼거리가 많다.  복잡하고 답답한 요즈음, 멍 때리기 전망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면서 멍 때려 보는 건 어떨까? 아마 머리가 한결 맑아질 것이다. 올 여름은 문화와 전통을 간직한 영덕에서의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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